(*English version will be followed)
레드 씬
이성휘 (하이트 컬렉션 큐레이터)
이지현은 그간 자신이 방문했거나 개인적인 장소들에 대해 작가의 기억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왔고 이를 통해 한 폭의 회화에 담을 수 있는 이미지의 레이어와 내러티브가 얼마나 혼성 및 확장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박물관, 카페, 성, 유적지와 같은 공공 장소 이미지에 작가의 사적인 장소, 사물, 기억에 대한 이미지를 섞어서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병치하거나 시공간을 확장하고 종횡으로 가로지르면서 회화적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또 존재하는 곳과 우리의 인지로부터 감춰진 곳 사이에 대해 기억이 병합되어 만들어지는 일종의 합성 공간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의 회화는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복기시킨다. 기억 속 실마리가 꼬리를 물면서 접합되고 짜이는 과정은 작가의 캔버스 화면 위에서 복층의 레이어, 창문 또는 액자 구조, 반사 표면의 표현 등으로 구현되곤 하는데, 이러한 회화적 장치들이 형식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 작업의 원인과 결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지난 2-3년 동안 판데믹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면서 이지현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회화, 드로잉, 인형 작업 등을 동시에 진행하거나 순환하는 방식으로 이어오면서 회화적 근육을 단련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가득한 공간인 모친의 부엌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어 진행된 일련의 회화들은 <레드 씬(Red Scene)> 시리즈로 명명되었는데, 처음에는 가구의 붉은 색 표면에 반사된 이미지로 시작되었지만 연작으로 진행되면서 ‘레드 씬’은 잊었던 과거를 불현듯 현실로 소환할 수 있는 장치이자 메타포로 기능하게 되었다.
1. 레드 씬(Red Scene)
이지현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기도 한 콜로세움과 드레싱 테이블을 중첩시킨 연작들처럼 일찍이 다층위의 회화를 통해 ‘하나의 차원에서 또 다른 차원으로 시선과 의식이 이동하여 만들어지는 복수적 인지 구조를 반영’하고,[1] 이때 그저 ‘비밀스럽게 숨겨진 미지의 차원들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자체가 시작과 끝이 없는 수많은 복수적 층위들로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2] 작가가 한 공간에 다른 공간을 삽입시키거나 그림 속에 다른 그림을 등장시키는 방식은 서구 회화의 전통을 벗어나지 않았고, 화면 속 공간은 복층의 레이어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시원하게 펼쳐진 공간적 시야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인물이나 기물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하였다. 그 결과, 이미 그림은 하나의 평면으로 융합되어버린 상태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가 몇 겹의 레이어를 걷어내면 제일 아래 디폴트 레이어에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이, 이미지가 중첩되는 논리나 개연성에 대한 유추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다. 이는 화면 속 광경에 대한 목격자의 위치가 화면 밖으로 설정되어 있을 때 특히 더 그랬다. 그의 첫번째 <Red Scene>(2012)은 완벽하게 세팅된 다이닝룸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이 장면이 대체로 주방 가구의 글로시한 표면에 반사된 광경이라는 것을 몇 개의 교차하는 선들을 통해서 유추 가능케 했다. 실제로 붉은색 외장의 주방 가구가 있는 모친의 다이닝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작업한 이 그림은 처음 발표된 2012년 무렵에는 작가가 꾸준히 그려 온 겹친 공간, 특히 작가가 향수를 느끼는 공간에 대한 작업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Red Scene> 시리즈를 이후 몇 차례 더 그렸는데, 기억 속 공간에 새로운 기억을 얹어 변질된 기억과 의식이 혼재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회화가 다른 회화를 지시하거나, 또는 새로운 회화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이때 그림들이 서로를 지시하는 방식은 단방향일 필요가 없기에 이미지는 훨씬 느슨하면서도 절묘하고 더 풍성해졌다.
모친의 다이닝룸에 대한 기억을 투영시켰던 첫 번째 <Red Scene>(2012)은 이후 작가의 다이닝룸에 대한 기억이 병치된 <Red Scene – Avon>(2015)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그림에 등장하는 테이블은 착석한 사람 없이 텅 비어 있지만 작가에게는 친숙한 사물들과 공간임을, 어긋남 없는 하나의 (반사된) 화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두번째 그림은 화면 중앙에서 식사하는 이들에게 낯선 거리감을 느끼는 듯 창문 프레임 안에 인물들을 전부 위치시켰다. 그래서 이 장면에 상정되어 있는 목격자는 창밖 너머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것처럼 소외되어 있는 느낌이다. ‘캔버스에 뭔가를 추가할수록 캔버스가 더 비는 것’으로 보였다는 작가의 말은 화면 안 테이블에서 정답게 오가는 대화와 식기소리가 이 광경의 목격자에게는 한없이 더 멀어지는 느낌임을 반증한다. 그림 구도상 가장 안쪽에는 빛이 하얗게 들어오는 창문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창문은 <Threshold – Bird Mobile>(2012-2013)이라는 작품에서는 주요한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식으로 다른 그림과 연결되어 또 다른 세계로의 통로가 된다.
<Red Scene – Glyptotek>(2020)은 작가가 코펜하겐 글립토텍 미술관을 방문했던 기억이 붉은 색 가구장 표면에 투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희미하게 다이닝룸의 흔적이 어른거리지만 그보다 선명한 이미지는 미술관 내부의 정원으로, 장소 자체는 이지현이 초창기 작업에서 많이 다룬 관광지, 미술관, 카페와 같은 공적인 공간의 성격을 띤다. 둥근 아치 안쪽으로 펼쳐져 있는 공간에는 기둥, 계단과 같은 인테리어 요소, 조각, 식물, 그리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등장 요소들이 많긴 하지만, 작가는 캔버스 화면을 대담하게 분할하고 붉은 색조의 변화 단계를 다양하게 구성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붉은 단색조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화면을 선사한다. 특히 미술관 실내 장면이 화면을 침투하는 시점이라면, 이 이미지가 투사된 가구장은 사선 방향으로 놓임으로써 화면 밖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Red Scene – Parts>(2020)나 <Red Scene – Cage 1>(2020)에서는 작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집안 물건과 소품, 그리고 컬렉션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헝겊 인형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가 파편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인형들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재봉틀로 작가가 직접 제작하여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들로, 그림의 모티프가 되기도 하지만 수채물감을 이용한 표현 방식에 있어서 큰 화면의 캔버스에 그린 회화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Red Scene – Cage 1>과 <Red Scene – Cage 2>(2021-2022)에 등장하는 새장은 작가가 실제로는 집에서 인형집으로 사용하는 소품이다. 그의 이웃 중에는 쿠키를 식히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물건의 실제 용도는 20세기 초반 실험실에서 사용하던 시험관 운반 랙이고, 이것이 빈티지 시장에 앤틱 소품처럼 흘러 들어온 것인데 사람들은 각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Red Scene – Cage 1>는 작가가 집안에서 이 장을 인형집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Red Scene – Cage 2>에서는 집안에 놓인 인형집이라는 기능적인 맥락보다는 이 새장의 조형적 특징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작가는 캔버스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의 크기로 새장의 크기를 증폭시켰고 내부의 인형이나 기물들보다는 철제 프레임과 가구장 프레임이 겹치고 교차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하였다. 또 불룩한 실린더 형태가 캔버스 화면 위에서 하는 조형적인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화면 안쪽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면서도 동시에 화면 밖으로 이미지를 밀어내어 관람자가 그림의 코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시선거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Red Scene – Cage 2>의 새장이 하는 역할을 <Red Scene – Glyptotek>에서는 아치가 하고 있다. 두 그림은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의 아치와 실린더가 원경과 근경의 대조적인 시선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2. 판타즈마(Fantasma)
이지현은 2012, 2013년경 개인전 《Threshold》에서 처음으로 ‘판타즈마(Fantasma)’ 시리즈를 선보였다. ‘판타즈마’는 작가의 사고 진행 과정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일련의 작은 회화 작업들로써, 그는 이 작업들이 시간이 걸리는 대형 페인팅 작업을 벽에 기대어 놓고 작업할 때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 두려고 옆 이젤에 세워 두고 노트하듯 그리는 에스키스 같은 그림이자 이미지 에세이라고 설명하였다.[3] 즉,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거의 날 것의 상태로 빨리 그려내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손을 빠르게 움직여 기록하더라도 생각은 그 사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손은 망설일 겨를 없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재촉을 받게 된다. 이 날 것 상태의 회화적 드로잉은 오래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들인 작업이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기억이나 착상에 의거한 이미지를 모티프 단위로 간결하게 끊어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형 회화 화면으로 이어지면서 이미지가 보다 은밀하면서도 유연하게 혼재되어, 회화가 하나의 캔버스 프레임이라는 한계에 갇히기 보다는 그림과 그림이 서로 연결되고 영감을 주고받아 또 다른 그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순환과 재생성의 가능성을 획득하였다.
사실 이지현은 여성작가로서 임신, 출산, 육아를 병행하게 되면서 작업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겪었다. 최근 2-3년 동안 이어진 판데믹 동안에는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것 외엔 여행과 이동이 수월하지 않았고 그 마저도 미 동북부의 혹독한 날씨 탓에 작업실을 가지 못할 때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을 강구해야 했다. 작가는 어릴 때 모친이 손수 만들어주었던 봉제인형을 떠올렸고 어릴 때의 기억을 복기하는 기분으로 천 위에 간단한 그림을 그려 인형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를 십 년 넘게 지속해왔다. 자투리천이나 광목천에 수성 사인펜이나 물감으로 눈코입을 간단하게 그린 후 솜을 넣어 재봉을 한 이 인형들은 완벽한 하나의 신체를 갖기 보다는 머리, 팔, 다리가 그때그때 탈부착으로 조립 가능하게 만들어졌고 작가가 틈틈이 모은 유리병, 그릇 등 작은 소품들과 함께 어느 새 작가의 중요한 컬렉션이 되었다. 그의 인형들은 머리 둘이 맞붙어 있기도 하고, 짝이 맞지 않는 팔다리를 가지기도 하고, 그때그때 소품에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색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식으로 괴상한 모습이긴 하지만, 마치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4]에 나올 법하게 그 기원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형상이 오히려 유니크한 재미를 선사하는 측면이 있고, 이는 곧바로 그림의 모티프로 등장하여 회화의 감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작가의 바느질 작업 공간을 부감 시선으로 보여주는 <Red Scene – Parts>는 실제 인형 얼굴을 붙여 놓은 것처럼 몇 개의 인형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광목천 위에 물감이 번지는 효과가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어린 시절에 작가가 가지고 놀던 인형들은 수성 사인펜으로 그린 부분이 눈물 같은 물기가 닿으면 번져 버리곤 했는데 그런 효과가 난 셈이다. 작가에게 인형 만들기는 일종의 촉각적인 드로잉이기도 하다. 그가 사용하는 광목천은 마치 사람 피부를 만지는 것처럼 보드라우며 솜이 주는 쿠션감 역시 포근하고 따뜻해서 인형을 손에 쥘 때 마음을 안심시켜 주곤 한다. 작가는 이렇게 만든 인형들과 틈틈이 모은 소품들을 몇 개의 선반장에 진열하여 자신의 컬렉션을 구성하였고, 이 진열장 중 일부는 붉은색 투명 아크릴로 덮개를 만들어 주었다. 이 붉은색 진열장 작업을 ‘Red Scene’ 회화들과 비교하여 보면, 덮개의 붉은색은 진열장 내부의 인형들의 실제 색상이나 겉면에 그려진 드로잉을 부분적으로 가리거나 왜곡하기도 하며, 전체적으로는 붉은 색조가 깔린 화면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시각화 해준다. 무엇보다도 진열장 앞에 서 있는 관람자로 하여금 작가의 첫번째 <Red Scene>의 배경이 되었던 모친의 다이닝룸 가구 표면에 비친 장면을 간접적으로 경험케 해준다는 점에서 회화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3. Re-portal
이지현은 어떤 기억을 그림으로 그리고 거기에 또 다른 기억을 덮어씌우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억이 순수할 수가 없고 얼마든지 왜곡, 조작 가능하여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자신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이미지를 덮어 씌워 미래 기억(future memory)을 담아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그림은 안 좋은 기억을 복기시켜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납득되지 않았던 과거의 어떤 일을 새삼 이해시키고 마음 속 걱정과 염려를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바꿔 주기도 한다.
2018년 작가는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Re-portal>(2017-2018)을 발표하였다.[5] 이 작품은 회화, 영상, 그리고 목조 구조체, 부드러운 조각과 오브제, 비디오, 사운드가 모두 종합되어 있는 설치 작업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진 물건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많은 레이어와 여러 기능을 가진 사물들에 흥미를 갖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Re-portal>의 전체 형태도 우주선이나 타임머신을 상징하는 형태로 구조물을 제작했고, 안쪽에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사물들과 재료들을 동원하여 작은 요새 또는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한 켠에서는 작가의 아들이 들려준 컴퓨터 안으로 들어갔던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꿈 속에서 컴퓨터 안으로 들어간 아이는 그곳에서 탈출하는 구멍(portal)이 있을 것이라 믿고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아들이 ‘portal’을 빠져나오는 출구라고 받아들인 것에서 착안하여, 출입이 모두 가능한 구멍이라는 뜻으로 이 작품 제목을 <Re-portal>이라 명명한 것이다. 거기에는 <Re-portal>이 여성, 딸, 어머니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소재뿐만 아니라 유년 시절의 기억, 그리고 가족을 회상하는 소재들을 관람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출입구(entrance)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도 깔려 있다. 호기심과 탐구심이 가득했던 유년 시절의 이지현에게 몽상은 다른 세계로 가는 중요한 창문이자 통로가 되어주었다.[6] 그래서 <Re-portal>은 그 통로를 향한 입구(entry)여야 할 뿐만 아니라 또다른 세계로 가는 출구(exit)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의 감상자들이 자신의 기억, 생각, 경험을 작품에 투영해보기를 바라는데, 그럴 경우 감상자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럼으로써 작가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7] 사실 그 자신부터가 타인의 저작에 자신의 기억과 몽상을 투영해보곤 하는 것 같다. 이지현은 사르트르, 카프카, 보르헤스 등의 문학작품을 좋아하며 자주 읽는 편이라고 한 바 있다. 그는 바슐라르가 몽상을 예찬하는 것이 좋고 융의 이론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무의식에 대한 해석을 대입해보기도 하였다.[8] 논문에서도 이들을 인용한 바 있는데, 특히 보르헤스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Re-portal> 작업에 제법 영향을 주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의 조상인 추이펀의 소설에 대해 설명하는데, 모든 소설에서 작중 인물이 여러 가능성과 마주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들은 버리지만, 추이펀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추이펀의 소설에서는 모든 결말들이 일어나고, 각 결말은 또 다른 갈라짐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9] 앞서 이지현의 ‘판타즈마’가 시간이 걸리는 대형 페인팅 작업을 할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때그때 잡아 두려고 작가가 작은 캔버스에 노트하듯 그린 그림이라고 말했는데,[10] 그러므로 ‘판타즈마’는 이지현의 회화가 더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단서를 만들어 놓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기억과 몽상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노트하여 모든 결말이 일어나게 하면서 또 모든 출발점이 되게 하는, 마치 추이펀의 소설처럼, 끝없이 갈라져 무한의 결말을 향하게 하는 회화적 모티프인 셈이다.
4. Where’s the sun?
<Summer Garage_Kronborg>(2020)는 판데믹이 한창이던 때 작가가 아들과 나눈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화창한 여름 하늘과 대비될 만큼 차고는 늘 음습한 장소인데, 마치 크론보그의 성의 나선형 돌계단이 그런 기운의 장소였던 것이다. 판데믹은 작가에게 익숙한 것들 가운데 불현듯 찾아온 음습한 기운이었고, 이런 낯선 우울감을 화창한 여름 하늘과 익숙한 인형, 그리고 아들의 낙서와 드로잉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림 중앙에 서 있는 커다란 인형은 작가가 만든 인형 컬렉션 중 하나인 ‘커피맨’이다. 어느 날 작가는 커피가 남아 있는 줄도 모르고 만들던 인형을 컵에 꽂아 두었다. 밤새 커피물이 든 인형이 마른 모습은 그 자체로 근사했고 이렇게 하여 커피맨이 탄생했다. 커피맨 인형은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지만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거의 등신대 크기가 되었다. 그 위쪽으로 쓰여진 문장 ‘Where’s the sun?’과 조그마한 드로잉들은 작가의 아들이 엄마의 노트에 낙서처럼 남겨 놓은 것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들이 써 놓은 질문은 그림에서는 마치 커피맨의 대사 같아 보인다. 그 문장 아래로 살짝 보이는 사진은 크론보그 성에 전시되어 있는 역대 햄릿 배역들의 초상으로 추측된다. 작가는 우울한 판데믹을 보내면서 덴마크의 크론보그 성을 방문했던 기억, 커피맨, 그리고 아들의 드로잉과 낙서를 하나의 화면으로 접합시켜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11] 감상자 입장에서는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지만 분명히 이 그림도 작가의 기억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작용이 불러일으킨 장면이다.
“지금 왕은 꿈을 꾸고 있어. 누구에 대한 꿈을 꾸는지 너는 아니?”
“그건 아무도 모를 걸.”
“왕은 네 꿈을 꾸고 있어. 그런데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는데.”
“사라져 버리겠지. 너는 꿈의 환영이니까. 만일 왕이 깨어난다면 너 역시 촛불처럼 사그라지고 말 거야.”
- 루이스 캐럴, 『거울나라의 앨리스』(1871)[12]
보르헤스는 동서고금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꿈 이야기』에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왕의 꿈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가 발췌 수록한 ‘왕의 꿈’은 겨우 몇 줄 밖에 안 되는 짧은 이야기지만, 자고 있는 붉은 왕과 앨리스가 동시에 서로의 꿈 속 존재가 되면서 누가 누구의 환영인지 규정할 수 없는, 마치 마주보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를 무한하게 반영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필자는 이지현의 <레드 씬> 연작뿐만 아니라 그의 최근작들을 살펴보면서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작업이 다음 작업의 거울이 되고, 혹은 또 다른 작업의 창이 되고, 이미지가 서로 돌고 돌면서 끊임없이 중첩되고 변형되어 재생성되는 반영과 변형, 그리고 순환의 관계. 이 모든 이야기의 창작자인 작가 이지현은 붉은 왕이기도 하고, 앨리스이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꿈에 꿈을 얹고, 기억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히면서 새로운 기억,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붉은 왕과 앨리스는 서로의 꿈에 존재하여 환영을 일으키는 관계로, 둘은 마주 보는 거울이 무한한 반사로 만들어내는 무한한 이미지 속의 존재인 셈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지현과 그의 회화는 붉은 왕과 앨리스의 관계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꿈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데 꿈에서만 ‘너’는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는 꿈의 환영일 뿐이라는 말은? 결국 이 모든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지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지현은 이를 의심하지 않으며, 회화로 담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꿈에서 그리고 회화 위에서, 아주 생생하게.
[1] 이은주, ‘하이브리드 스페이스’, 『Lee, Ji-hyun: Reflective Surface』(아라리오갤러리, 2008), p.9.
[2] 위의 글, p.8
[3] 이진명, ‘작가와의 인터뷰: 이지현’, 『Threshold』(두산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2013), p.26.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남진희 옮김,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서울: 민음사, 2016.
[5] Jihyun Lee, “Re-portal” (MFA, School of Visual Arts, New York, 2018).
[6] 위의 논문, pp.7-9.
[7] 위의 논문, p.13.
[8] 이진명, 앞의 인터뷰, p.30.
[9]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픽션들』(서울: 민음사, 2011), pp.122-123.
[10] 이진명, ‘작가와의 인터뷰: 이지현’, 『Threshold』(두산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2013), p.26.
[11] 크론보그 성은 덴마크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단스케가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남진희 옮김, ‘왕의 꿈’, 『꿈 이야기』(서울: 민음사, 2016), p.240에서 재인용.
* 이 글은 2022년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의 임시공간인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에서 열린 이지현 개인전 ‘레드씬’ 에 쓰였던 전시 서문입니다.
글 © 이성휘
Red Scene
LEE Sunghui (Curator, Hite Collection)
In her work, Jihyun Lee overlays memories of places she visited with subsequently derived images to demonstrate that layered images and narratives within a single painting could be infinitely expanded and compounded. Lee constructs pictorial narratives by juxtaposing the familiar and unfamiliar, stretching and mingling time and space, and mixing up images of places, objects, and memories of her own with those of public locales such as museums, cafes, castles, and cultural relics. She also paints synthetic spaces drawn from memories of existent places and locations that elude our notice. Lee’s paintings remind us that the flow of consciousness is nonlinear. The nodes that constitute the chains of memory succeed one another; combined and knit together, they materialize as multiple layers, windows, frames, or reflective surfaces on the canvas. Such pictorial devices go beyond formality to hint at the cause and effect of her artistic vision. Living through the painful days of the pandemic over the past several years, Lee contemplated ways to sustain her productivity, training her pictorial muscles by simultaneously working on or shuttling between paintings, drawings, and crafted dolls. Among them, the series of paintings that emerge from her mother’s kitchen – a nostalgic space from her childhood memories – are entitled <Red Scene>. Since its initiation as images reflected on the red surface of the kitchen furniture, <Red Scene> became a device and metaphor that summons lost past moments into the reality of the here and now.
1. Red Scene
Gesturing back to signature works from her early days, wherein images of the Colosseum and dressing tables overlap, Jihyun Lee engages multiple layers to reflect polyphonic cognitive structures to represent the flow of perspectives and consciousness as they move from one dimension to another. By doing so, she attempts to ‘show how our consciousness is comprised of countless strata with neither beginning nor end, rather than simply trying to explore concealed dimensions of known nature.’ Whereas the manner in which she introduces a picture within another or inserts places within yet others falls into the tradition of Western paintings, the space on the canvas defies the confines of the two dimensional structure to offer a sprawling view that allows for relatively detailed portraits of characters and objects. While remaining anchored to a single plane, the painting thus affords the possibility of deducing the visual logic or feasibility for the viewers in its overlays, instilling the impression that they could be peeled off to ultimately reveal the default strata – a sense that grows stronger when the viewers are positioned to peek into the painting. Her first work, <Red Scene> (2012), shows a perfectly set dining room; Lee lets the viewer guess, from the criss-crossed lines, that the scene is a reflection on the glossy surface of the kitchen furniture. Indeed harkening back to Lee’s memory of her mother’s dining room, which housed red-surfaced kitchen furniture, this piece set the stage for the recurring motif of overlapping spaces and was read as a nostalgic recollection upon its release in 2012. Taking her spatial configuration of distorted memories and their realization a step further, Lee produced subsequent series to follow the <Red Scene>, adding new memories to remembered spaces to build novel relations that cultivate fresh pictorial potentials or allusions to future possibilities. As the referential relationship between the paintings is multidirectional, the images have grown looser, more prosperous, and more sophisticated.
<Red Scene – Avon> (2015) at once builds on and contrasts the first <Red Scene> (2012) series’ focus on memories of the dining room. The table in the first painting, while devoid of human diners, seats familiar objects and spaces through its singular reflection, a seamless feature. The second painting, meanwhile, positions all the human figures within a window frame as if to hint at a sense of distance that the artist feels toward those dining on the center stage. Viewers may also feel alienated as they stand peeking in through the window. Lee’s comment on how “the fuller the canvas became, the emptier the space felt” demonstrates how the intimate conversations and the clinking sounds of tableware in the scene may exacerbate the sense of distance that the viewer feels. At the deep center of the canvas sits a window awash in a stream of light, which also was featured prominently in her other work <Threshold – Bird Mobile> (2012-2013). One painting leads into another, serving as the conduit to new worlds.
In <Red Scene – Glyptotek> (2020), the red furniture surface reflects Lee’s memory of visiting Glyptotek Copenhagen Art Museum. While bearing faint traces of the dining room, the painting redirects attention to vivid imageries of the garden within the museum, gesturing to Lee’s earlier interest in public spaces such as tourist sites, art museums, and cafes. The space that unfolds beyond the rotund arch comprises architectural elements such as columns and staircases along with sculptures, flora, and people sitting or standing. While juggling numerous objects and features, Lee manages to present a wide-open view by gradually limiting the red monotone hue and boldly sectioning the canvas. Whereas the interiority of the museum is subject to an inward perspective, the reflective surface of the furniture runs diagonally to expand the viewer’s purview beyond the canvas. Painted around the same time, <Red Scene – Parts> (2020) or <Red Scene – Cage 1> (2020) feature sundry items from Lee’s daily life, collections, and household objects. The most conspicuous figures are fragmented pieces of rag dolls in the form of faces or body parts. Personally sewn by Lee herself, the doll collection is a key motif that technically gestures toward Lee’s larger watercolor paintings.
The birdcage in <Red Scene – Cage 1> and <Red Scene – Cage 2> (2021-2022) is where Lee houses her dolls at home. Her neighbors also use the same item to cool home-baked cookies. Used to transport test tubes at lab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object ended up in vintage markets as an antique item, and is now used to fulfill the owners’ various needs. <Red Scene – Cage 1> shows how Lee uses the cage as a dollhouse. <Red Scene – Cage 2> on the other hand lays focus on the cage’s significant appearance to lie more in its formative rather than functional characteristic as a dollhouse. Lee enlarges the object to fill up the entire canvas, and focuses her attention more on the crisscrossing lines of the steel frames and the furniture rack rather than the dolls or other objects in the cage. The formative role of the bulging and cylindrical form on the canvas also appears to be crucial; while drawing the viewers’ gaze into the canvas, it also pushes the image out to create a sense of proximity. The cage’s function in <Red Scene – Cage 2> is taken up by the arch in <Red Scene – Glyptotek>. The two paintings are notable in that the cylinder and the arch, respectively, generate perspectival contradictions between distant and close-range views.
2. Fantasma
Lee Jihyun first introduced the <Fantasma> series at her solo exhibition 《Threshold》 in 2012-2013. <Fantasma> consists of a series of paintings that compactly captures her thought process. Lee describes the pieces as esquisses (or perhaps image essays), which she props on easels and uses to pin down fleeting ideas while working on large paintings standing against the wall. In other words, the paintings help her capture raw, ephemeral thoughts. Even the most hastily drawn sketches tend to fall behind the speed at which ideas flow on, but this sense of desperation encourages the hand to accelerate its pace. These raw pictorial drawings are short records in motif units that seize ephemeral memories or ideas rather than the product of enduring focus. These images become more secretive as they mix and mingle in their migration to a large canvas, expanding beyond the canvas frame to espouse connections and inspirations in a continuous cycle of regeneration.
As a woman, Lee had to forge challenges that arise from pregnancy, birth, and childcare in terms of time management and mobility. Barring the commute between home and the studio, Lee could hardly travel or even leave the house during the pandemic over the past couple of years. When severe weather descended upon her Northeastern abode in the US to further hamper mobility, she had to think of ways to work from home. Lee remembered her mother’s handcrafted dolls, and began making them herself by drawing rough sketches on fabric as if retracing her childhood memory. She continued this process for over a decade. Their faces drawn on cotton or rag pieces with a water-based marker or watercolor, then stuffed and machine-sewn into shape, the rag dolls are built piece by piece to allow for ready transplants across different heads and limbs. Along with glass bottles and tableware, Lee accumulated the dolls over the years to render them central to her collection. The dolls vary in feature, some sporting conjoined heads and others with mismatched limbs. Rather Frankenstein-esque in their uncanniness, the dolls defy the kind of provenance that Luis Jorge Borges’s Book of Imaginary Beings. The grotesque and absurd forms are uniquely amusing, serving as a key motif in her paintings to inspire new sensitivities. <Red Scene – Parts> for instance, which shows her sewing space from a bird’s-eye view, features doll faces that appear to be tacked onto the canvas in their vivid feel. The bleeding paint on cotton creates a striking visual effect, which alludes to Lee’s childhood memories of washable pen-drawn doll faces that bled upon contact with water. Lee sees doll-making as a tactile form of drawing. The cotton cloth that she uses is soft to the touch like human skin, and the cushy feel of the filling is reassuringly warm and cozy. Lee built red tinted transparent plexiglass covers for the cases that house for her collections of dolls and sundry objects gathered over years. Compared to her other Red Scene paintings, the red hue of the covers occasionally obscure or even distort the drawings on the surface or the actual color of the dolls in the cases, enacting the feel of the red visual filter. By inviting the viewers to indirectly experience the scene reflected on the surface of her mother’s dining room furniture, which serves as the backdrop of her first <Red Scene> series, this painting falls within the larger orbit of her artistic vision.
3. Re-portal
Lee notes that new memories could be created in the process of painting existing ones, which may then be overlaid by others. Since memories are never pure but are rather subject to manipulation and distortion, Lee considers her work as representative of future memories arising from new images overlaid upon past recollections. The paintings could thus dredge up bad memories but also help understand past incidents that had defied comprehension, transforming concerns and worries into serenity and stability.
In 2018, Lee presented <Re-portal> (2017-2018) as her thesis project in graduate school. This piece is a mixed-media installation consisting of paintings, video works, wooden structures, soft sculptures, objects, and sound. Lee’s taste for multi-functional objects can be seen in the multiple layers and functions or imaginaries of such possibilities in her work. The overall form of <Re-portal> resembles that of a spaceship or time machine, whereas the interior feels like a small fortress or a hideout featuring familiar domestic objects and materials. One corner of the installation tells the story of her son’s dream of exploring the innards of a computer. Traveling the inner sanctum of the computer, the boy believes that there would be an escape portal. Inspired by her son’s understanding of ‘portals’ as ‘exits,’ Lee entitles the piece <Re-portal> to imagine a hole that could serve as both entrance and exit. <Re-portal> also reflects her wish for it to serve as an entrance to help viewers understand the objects representing her personal view as a woman, daughter, and mother alongside family and childhood memories. For a curious and adventurous girl that she was, reverie was a key window and conduit to another world. This is why <Re-portal> is both a point of entry and exit. Lee hopes that the viewers would project their own memories, thoughts, and experiences onto her work, going on to produce their own narratives and subsequently understand Lee’s own. In fact, Lee appears to be projecting her own memories and reveries onto other people’s works. Lee mentions how she enjoys and frequents the literary works of Sartre, Kafka, and Borges. She likes Bachelard’s praise of reverie, and even applies her own interpretation of the unconscious to Jung’s theories. She also cites them in her thesis; Borges’s “The Garden of Forking Paths” was a key inspiration for <Re-portal>. The narrator in this short piece speaks of a novel by his ancestor Ts’ui Pên; while most fictional characters choose one path over others at forking points, the character in Ts’ui Pên’s novel simultaneously selects all the paths. By doing so, in the novel, all possible endings actually happen, which then each serves as new forks of their own. Lee’s <Fantasma>, as mentioned above, is a collection of sketches that capture ephemeral ideas in her process of producing larger paintings. As such, <Fantasma> not only serves as departure points for new possibilities in Lee’s work, but also works as artistic motifs that capture everything, memories and reveries alike, enabling all endings to happen while functioning as departure points. Like Ts’ui Pên’s novel, the countless forks expand toward infinite endings.
4. Where’s the Sun?
<Summer Garage_Kronborg> (2020) was inspired by a conversation Lee had with her son during the height of the pandemic. In stark contrast to the reproachfully August summer sky, the garage is a perpetually damp place, which is the very feel that the spiral staircase of Kronborg Castle impressed upon Lee. In like fashion, the pandemic was also a damp miasma that suddenly struck her, emerging out of the familiar. The piece ironically captures this sense of depression through the bright and sunny summer sky, familiar dolls, along with her son’s doodles and drawings. The big doll occupying center stage is called “Coffee Man,” listed in her doll collection. One day, Lee succrently stuck an unfinished doll in a mug still containing coffee. This doll, which eventually became “Coffee Man,” soaked up the coffee overnight; the dried and dyed feature it ended up with carried a surprising allure. Originally no larger than a human hand, “Coffee Man'' grows into a life-size feature on a canvas. The top-portion inscription ‘Where’s the sun?’ and the small drawings are taken from her son’s doodles in her notebook. The question that her son jotted down looks as if it were spoken by “Coffee Man” himself. The photo that peeks out from beneath appears to be the portraits of Hamlet performers, exhibited at Kronborg Castle. Lee crafted out the painting by fusing “Coffee Man,” her son’s drawings and doodles, and her memory of visiting Kronborg Castle in Denmark during the depressing days of the Pandemic. Viewers may not be able to logically constellate these elements, since the work is the product of Lee’s free-floating association.
“The King’s dreaming now. What do you think he’s dreaming about?”
“Nobody can guess that.”
“Why, about you! And if he left off dreaming about you, where do you suppose you’d be?”
“I don’t know.”
“You’d be nowhere. Why, you’re only a sort of thing in his dream. If that there King was to awake, you’d go out—bang!—just like a candle!”
- from Lewis Carroll’s Through the Looking Glass (1871)
Borges includes an excerpt on the Red King’s dream from Lewis Carroll’s Through the Looking Glass in his Libro de sueños (The Book of Dreams), a collection of dreams across cultures and ages. Over a short span of several lines, the story of “The King’s Dream” generates a mise en abyme, in which the sleeping Red King and Alice become figments of each other’s dreams as mutual illusions. I was reminded of this tale while exploring not only Lee’s <Red Scene> series but also more recent works. One piece mirrors the next or yet others; images infinitely circulate to overlap, transform, and regenerate through reflection, metamorphosis, and circulation. Lee, as the creator of all these stories, is at once the Red King and Alice, overlaying dreams upon yet others, adding new images to memories, creating memories and images anew. The Red King and Alice instigate illusions by featuring in each other’s dreams as entities in the infinite imageries of a mise en abyme. Closing this essay, I feel the urge to subtend Lee and her paintings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ed King and Alice. How are we to understand, we may still ask, the claim that “you” could only exist in dreams when dreams are themselves not real? Perhaps the story’s point lies in making us feel as if that which is said not to exist, is actually real. A believer herself, Lee captures this sense in paintings. As if to claim that even that which is invisible still exists – in dreams, and in her paintings, with palpitating liveness.
* This essay was written on the occasion of Jihyun Lee's solo exhibition, Red Scene at Arario gallery’s temporary space; Underground in SPACE in Seoul in 2022.
Text © LEE Sunghui